[함지현 기자의 EX레이더] 거래소 ‘창조경제’의 추억

by 함지현조회 9972022-04-21

최근 경찰이 ‘퓨어빗’ 사기 사태로 인한 피해액 40억 원 중 30억 원을 피해자에게 돌려줬습니다. 정확히는 2018년 퓨어빗 일당이 가로챈 이더리움 1만 6907개 중 1060개를 되찾은 것인데요. 비록 회수율은 10%에 미치지 못했지만, 4년 동안 이더리움 가격이 16배 상승하면서 피해자들은 피해의 상당 부분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퓨어빗 사기는 한때 유행하던 채굴형 거래소의 도덕적 해이를 잘 보여준 사례 중 하나입니다. 채굴형 거래소는 이용자가 가상자산 거래만 해도 자동으로 거래소 토큰을 채굴할 수 있게끔 하는 구조였는데요.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거래소 토큰의 가치가 상승하고, 토큰을 판매해 얻은 수익을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용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2018년 11월, 퓨어빗은 자체 토큰 ‘PURE’ 1차 판매에 참여하면 그 수익의 90%를 배당금으로 주겠다며 홍보했습니다. 이에 총 250명의 투자자가 운영진에게 이더리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1차 판매가 끝나자마자 운영진은 웹사이트를 폐쇄하고 잠적했습니다. 알고보니 퓨어빗은 실제 거래소가 아닌 사기를 위한 가짜 웹사이트였던 것입니다.


2018년 6월에는 코인레일이 해킹으로 인한 보상을 자체 토큰인 ‘RAIL’로 지급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이로 인해 ‘창조경제’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는데요. 결국 500억 원대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이 걸렸고, 2021년 11월 법원이 ‘가상자산 반환 의무 미이행’을 인정하며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또 다른 채굴형 거래소 역시 투자자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2019년 8월, 코인제스트가 자금난을 이유로 원화 출금을 중단한 것인데요. 코인제스트는 2020년 3월, 원화 대신 자체 토큰 ‘COZ-S’를 지급하고자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응답을 조작하는 부정도 저질렀습니다. 결국 2020년 5월 코인제스트 대표도 투자자들에게 고소를 당했습니다.


앞서 본 사례들을 보면 거래소의 토큰 발행은 이해상충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거래소가 지급준비금 없이 자체 토큰을 찍어내거나 큰 이익을 보기 위해 자체 토큰의 시세를 조종한다든지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거래소의 이해상충을 막을 법적 근거로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제10조의20 제5호가상자산사업자나 가상자산사업자의 특수관계인이 발행한 가상자산의 매매·교환의 중개·알선 등 금지'가 있습니다. 이로써 앞으로는 2018년 때의 ‘거래소 창조경제’ 시절로는 돌아가지 않을 전망입니다.


다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습니다. 시행령의 모법인 특금법에는 이해상충 방지 규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법무법인 주원의 정재욱 변호사는 “모법에 관련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시행령에만 관련 규정을 두고 있어 유효성 논란이 발생할 수 있고, 위반 시 제재 수준도 1억 원 이하의 과태료에 불과해 실효성도 문제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거래소공개(IEO)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IEO가 허용되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거래소 창조경제’의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해상충 방지, 투자자보호 등을 담은 법안이 먼저 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함지현
연구원

외부 기고자

가상자산 거래소(EX)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포착해 소개하여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현명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