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트레이딩 봇, 전문가는 왜 권하지 않나
AI로 예측시장에서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이용해 자동매매 봇을 만들고, 뉴스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확률이 잘못 매겨진 곳에 베팅한다고 한다. 이런 봇은 폴리마켓 같은 예측시장의 API에 접속해 사람보다 빠르게 거래를 체결한다. 차익거래 전략을 쓰기도 한다. 같은 이벤트가 플랫폼마다 다른 확률로 거래되면, 싼 쪽에서 사고 비싼 쪽에서 팔아 스프레드를 챙긴다. 튜토리얼 영상이 쏟아지고, 바이럴 스레드가 퍼지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AI를 직접 만드는 회사들, 이를테면 앤트로픽, 오픈AI, 구글 같은 회사들은 이 시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수익으로 직결되는 AI 트레이딩의 시대가 열린 게 사실이라면, 가장 앞서야 할 회사들 아닌가. 그런데 왜 침묵하고 있을까. 혹시 개인 투자자들이 열광하는 이 자동매매의 꿈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본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이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빅테크가 AI 트레이딩에 손 안대는 이유는?
크립토VC 드래곤플라이캐피털의 하시브 큐레시는 지난 3월 2일 팟캐스트에 출연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선,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일은 결코 아니다. AI에게 블록체인 작업을 시키는 건 이미 가능하다. EVM 시뮬레이터로 토큰 스왑이나 루프 렌딩 같은 작업을 테스트하는 것은 간단하다. 안 하는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첫째, "크립토에 대해 여전히 우려 섞인 시선과 편견이 존재한다” AI 기업들이 자사 브랜드를 걸고 뛰어들고 싶은 영역이 아니다. 오픈소스 AI 에이전트 프로젝트인 오픈클로의 창시자가 밈코인 투기꾼들의 괴롭힘에 시달려 프로젝트를 접으려 했다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둘째, 더 결정적인 건 책임 리스크다. 클로드가 레버리지 트레이딩을 잘못해서 200만 달러를 날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혹은 1만 달러를 엉뚱한 주소로 보내버리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 이용약관에 면책 조항이 백개씩 있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피해 사연은 바이럴을 타고, 언론이 달려들고, AI 기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목소리로 확산할 것이다. 큐레시는 “100% 일어날 일”이라고 단언했다.
코딩 조언이 틀리면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지갑이 털리면 소송이다. 큐레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펩타이드를 제 배에 직접 주사하는 것에 비유했다. 조언을 주는 것과 직접 돈을 굴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위험이라는 뜻이다.
물론 앤트로픽은 AI가 스마트 컨트랙트 취약점을 공략하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건 사이버보안 연구이지 트레이딩 제품 로드맵이 아니다. 어느 프론티어 AI 기업도 크립토 트레이딩을 위한 모델을 훈련한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 큐레시는 만약 변곡점이 온다면 그건 경쟁 때문일 거라고 봤다. 어느 한 기업이 “크립토 결제 볼륨을 경쟁사에 뺏길 수 없다”는 판단에 갑자기 모두의 질주를 촉발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는 침묵이다.
‘내가 할 수 있다면 제인스트리트도 할 것’
빅테크가 안 한다 해도, 개인은 봇으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품는 기대다. 하지만 큐레시의 대답은 냉정하다. 핵심은 간단하다. 클로드는 공개 모델이다. API 요금만 내면 누구나 같은 모델에 접근할 수 있다. 내가 클로드로 만든 매매 전략이 효과가 있다면, 세계 최대 퀀트 트레이딩 펌인 제인스트리트도 같은 전략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차이가 있다면, 제인스트리트는 그 봇을 5,000개 동시에 돌릴 것이다. 네트워크 인프라가 더 빠르고, 자본이 비교할 수 없이 크다. 수익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개인 트레이더가 로그인하기도 전에 이미 증발해 있을 것이다.
큐레시의 표현은 명쾌하다. “기본 모델에 들어 있는 알파라면, 제인스트리트가 지금 이 순간 이미 하고 있다.” 개인 봇이 이기려면 남들에게 없는 데이터, 남들이 쓰지 않는 분석 틀, 모델에 내장되지 않은 고유한 통찰이 필요하다. 클로드에 API를 붙여 누구나 짤 수 있는 전략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 벌면 누군가 잃는다
한 발 더 들어가보자. 투자 시장의 구조는 냉혹하다. 누군가 돈을 벌었다면, 그 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시장 전체가 끊임없이 팽창하는 국면이 아닌 이상, 모든 참여자가 동시에 수익을 올릴 수는 없다. 한쪽의 이익은 다른 쪽의 손실이다. 이건 AI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장의 물리 법칙이다.
따라서 “모두가 AI 봇을 돌려서 모두가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 명이 봇을 돌릴 때는 우위가 있을 수 있다. 열 명이 돌리면 경쟁이다. 1만 개의 봇이 같은 시장에서 같은 모델로 같은 전략을 동시에 돌리면, 그건 수익 창출이 아니라 수수료 소진 경쟁이다. 알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남는 돈은 더 빠르고 더 많은 자본을 가진 쪽으로 흘러간다. 개인 투자자에게 남는 건 API 사용료 청구서뿐이다. AI가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게 아니라, 같은 게임을 더 빠른 속도로 돌릴 뿐이다.
나약한 인간이 시장을 시장답게 만든다
시장에는 펀더멘털이라는 중력이 있다. 기업의 실적, 기술의 가치, 경제의 방향. 장기적으로 가격은 펀더멘털로 수렴한다. 이건 변하지 않는 원칙이고, AI가 등장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펀더멘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같은 실적 발표를 보고도 누군가는 사고 누군가는 판다. 투자 시계가 다르고, 포트폴리오 사정이 다르고, 분석 틀이 다르다. 이성적 판단의 차이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 위에 감정이라는 레이어가 겹친다. 불안, 배짱, 기대, 꿈 같은 것들이 판단에 복잡하게 녹아든다. 공포에 팔고, 환희에 사고, 확신에 버틴다. 때로는 이유 없이 움직이고, 때로는 뉴스보다 먼저 반응한다. 바로 그 틈새에서 이익이 발생하고, 그것이 시장을 시장답게 만든다.
감정 없는 기계가 이 모든 것을 아무런 흔들림 없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건 인간이 운영하던 시장이 아니다. 전혀 다른 시장이다. 변동성이 줄어들고, 감정의 틈새가 사라지고, 비효율이 제거된다. 완벽하게 효율적인 시장에서 초과수익은 정의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봇을 돌려도 시장 평균 이상을 벌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시장에서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수익인가, 참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가? AI가 시장의 모든 비효율을 제거해버린 뒤에도 투자라는 행위에 의미가 남는다면, 그것은 숫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와야 한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다.
결국 사람이다
AI 트레이딩 도구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 분석, 리스크 관리, 시장 모니터링에서 AI는 강력한 보조 수단이다. 정보를 빠르게 정리하고, 놓치기 쉬운 패턴을 잡아내고, 감정적 판단을 견제하는 데 쓸 수 있다. 도구로서의 AI는 이미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AI 봇을 돌리면 자동으로 돈이 벌린다”는 탐욕의 서사다. 그 서사는 시장의 제로섬 구조를 무시하고, 기관과의 경쟁 현실을 무시하고, 투자라는 행위의 본질을 무시한다.
돈을 버는 건 AI가 아니다. AI를 남다르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결국 돈을 버는 건 도구가 아니라 판단이고, 판단은 아직 사람의 영역이다. 그 판단마저 기계에 맡기는 순간, 투자자는 시장에서 퇴장하는 것이다. 기계만 남은 시장은 거울 두 개를 마주 세운 방과 같다. 끝없이 반사하지만, 새로운 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격은 움직이지만 의미가 없고, 거래는 발생하지만 가치 판단은 없는 그런 곳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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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외현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
-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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