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지현 연구원의 EX레이더] 유럽연합의 ‘미카(MiCA)’ 법안 통과에도 남은 의문점들

by 함지현조회 1,7872023-05-23

2023년 4월 20일,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의 첫 디지털 자산 규제 법안 ‘미카(MiCA, Markets in Crypto Assets)’가 입법됐다. 법안이 발의된 지 3년 만에 유럽의회(EP, European Parliament)에서 최종 의결된 것이다. 이로써 유럽연합 회원국(27개국)의 가상자산사업자들은 일괄적으로 미카 규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바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쟁점 조항별로 발효 시기도 다르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는 2024년 7월, 트래블룰 관련 규제는 2025년 1월부터 시행된다.


미카 법안으로 인해 전 세계 최초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규제가 마련됐다는 점과 트래블룰 규제(1000 유로, 약 150만 원 이상에 적용) 시행으로 디지털 자산 자금세탁방지(AML) 지침이 글로벌 정합성을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2022년 3월부터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을 통해 국내 가상자산사업자(VASP, Virtual Asset Service Provider)에게 트래블룰을 시행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들의 트래블룰에 대한 진척 사항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그쳤다. 


이렇듯 미카는 아직 디지털 자산 업권법이 없는 국가에게 참고 사례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미카 규제를 뜯어보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 규제 자체보다는 규제 내부의 불명확성이 디지털 자산 업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트래블룰, GDPR에 저촉되지는 않을까?

우리에겐 어느 정도 친숙한 트래블룰이 유럽에서는 상당히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래블룰은 한 가상자산사업자에서 다른 가상자산사업자로 100만 원 이상의 디지털 자산이 전송될 시 그 송신인과 수취인의 성명, 지갑 주소 등을 파악하고 기록하는 의무를 뜻한다. 그 경우 가상자산사업자가 이용자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열람하게 된다. 트래블룰이 유럽연합 국민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유럽은 2018년 5월부터 개인정보보호 법령인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시행하는 등 어느 국가보다 더 개인정보보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으로 미카의 트래블룰 규제가 GDPR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끔 추가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디파이도 금지되는가?

미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 Electronic Money Token)과 자산준거토큰(ART, Asset-Referenced Token)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전자화폐토큰은 USDC(서클), USDT(테더)처럼 그 가치가 단일 법정화폐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 자산준거토큰은 메타의 디엠(Diem)처럼 여러 법정화폐에 연동되거나 다른 디지털 자산을 담보로 삼는 스테이블코인을 의미한다. 


미카 법안이 시행되면 전자화폐토큰과 자산준거토큰 둘다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는 일이 금지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은행처럼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로부터 직접적으로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에 스테이킹을 한 후 이에 대한 이자를 얻는다. 그렇다면 아베(Aave), 컴파운드(Compound)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디파이 렌딩(대출)을 사용하고 이로 인한 이자를 받는 것도 금지되는 것일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선 확답할 수 없다. 그러나 미카 법안에 디파이에 대한 규제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탈중앙화 정도를 측정할 것인가?

미카 법안은 애매하게 탈중앙화된 기업에겐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흔히 조직을 통제하는 특정 주체가 없다고 알려진 디파이나 탈중앙화 자율조직인 다오(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는 적용 대상이 아니긴 하다. 문제는 ‘100% 탈중앙화’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디파이 프로토콜에는 개발자, 마케팅 담당자 등이 존재한다. 다오에도 조직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핵심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이를 ‘탈중앙화를 흉내 낸 중앙화 기업’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비탈릭 부테린의 영향력이 상당한 이더리움 재단이나 설립자 룬 크리스텐슨이 핵심 거버넌스 제안을 내놓은 메이커 다오도 탈중앙화된 프로토콜이라고 보기 어려울 테다.


이처럼 탈중앙화와 중앙화는 칼로 무 썰 듯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카 법안에는 어디까지를 탈중앙화된 프로젝트로 볼지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지 않다. 법안에서도 ‘탈중앙화’에 대한 정의를 제시해야 가상자산사업자들이 법 적용 대상에 해당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미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지급준비금 보유 의무, 디지털 자산 프로젝트에 대한 발행 공시 의무 등을 처음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디지털 자산 산업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들로 인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이 ‘제2의 미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 최초 디지털 자산 규제 법안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발효 시기 전까지 시행령 등을 통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함지현
연구원

외부 기고자

가상자산 거래소(EX)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포착해 소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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